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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칭유래

동명칭 유래

초평동(楚坪洞)

초평동은 정조(正祖) 13년에 발간된 수원 부읍지(水原 府邑誌)에는 초평면(草坪面)이었으나 1831년(순조31년)에 발간된 화성지(華城地)에서는 초(楚)평으로, 재부(在府), 남거(南距) 40리로 범 14동이 있었으며,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화성지(華城誌)에는 궐리사가 초평면에 속해 있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호면, 초평면, 산성면, 문시면 등 4개의 면이 성호면으로 통합되어 오늘날 오산시의 기초가 되었다. 초평동은 오산 서부의 전형적인 전원도시로 농, 공, 주거지역이 공존하는 지역적 특성이 있으며, 1989년 1월 1일 오산이 시로 승격되면서 옛지명을 되찾아 초평동이 되었다.

서동(西洞)

서동은 서촌이라 하여 오산의 가장 서쪽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으로써 1동과 2동으로 되어있으며, 예전에는 초평면의 면사무소가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으며 여들이라고도 불렸다. 서1동을 서녘말(마을)이라 하고, 서2동을 가리켜 여들(마을)이라 지칭한다. 보통 외지에서는 서동 전체를 말하기도 한다.

벌음동(伐音洞)

벌음동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지형이 벌려져 있어 버르미라고 했다는 설과 마을 모퉁이에서 큰소리가 나면 마을이 시끄러워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한자로 벌음리(伐音里)라고 썼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마을의 주민들, 특히 이천 서씨 집안에서 전해오는 구전에 따르면 마을 지명 벌음(伐音)리의 벌자가 원래는 벌림벌(伐)이 아니라 떼벌(筏)이었다고 하며, 이 지명에는 음양의 의미가 있으며 마을의 지형이 여자의 성기처럼 벌려져 있어 아낙네의 바람기를 잠재우기 위하여 조상깨(마을 앞에 있던 숲 - 지금은 시의 보호수인 팽나무가 있는 곳)를 마을 앞에 만들어 막은 데서 마을의 지명이 생겼다는 것이다.

탑동(塔洞)

탑이 있었던 마을이라 타마루, 돌머루, 석우리 등의 돌과 관련있는 여러 지명으로 쓰여졌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수성 최(崔)씨,파평 윤(尹)씨, 전주 이(李시),수원 백(白)씨의 족보들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중엽부터 탑동이란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지명이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탑은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라고 하나 크기나 모형은 전혀 알 수 없고 탑이 세워졌던 자리를 탑재라고만 전한다. 그러나 1991년에 마을주민들이 뜻과 정성을 모아 탑이 있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돌탑을 만들어 세워 탑동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두곡동(斗谷洞)

두곡동은 엣날부터 말여울로 쓰여졌으나, 리명 제정시 한자가 비슷한 두곡리로 되었다는 설과 마을의 지형이 말처럼 생긴데서 말여울 또는 두곡, 두골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1831년(純祖31년)에 발간된 「화성지」에 의하면 당시 초평면에 마유동(馬遊洞)이란 마을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말과 관계가 있는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누읍동(樓邑洞)

누읍동은 눕새골이라고도 하며,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운 와우형(臥牛形)이라는 데서, 누운 소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누운소→ 누은소→ 누음소→ 누음새→ 누읍새→ 눕새로 구전되면서 누읍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31년에 발간된 「화성지」에 의하면 초평면지역에 누읍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수동(佳水洞)

가수동은 예전부터 물맛이 좋고 물이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냇물이 맑고 깨끗하지는 않으나 예전에는 오산천의 물도 깨끗하고 아름다워 외지에서는 이곳을 물이 아름다운 마을 가수동이라 했다고 한다. 가 수동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798년(正祖13년)에 초평면의 방리로 가사(加士)리란 지명으로 나오고,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 시에는 샘골을 통합하여 가수(加水)동이 되어 성호면에 편입이 된다. 이런 사실로 보아 가수동의 어원적 변화는 가술(加述)→ 가숫골→ 가술리→ 가수동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관리담당자 : 초평동 문의 : 031-8036-6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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